정상영 명예회장의 혼맥, 독립운동가 집안과 인연
고(故) 정상영 KCC 명예회장(1936-2021)은 조은주(1936) 여사와 연애결혼을 했다. 조 여사는 독립운동가의 외손주이자 한국전쟁 때 전사한 군인 집안 출신이었다. 두 사람은 현대건설에서 만났는데, 조 여사가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현대건설 경리팀에서 근무할 때였다.
조 여사는 20년 넘게 슬레이트공장 인부들의 밥과 새참을 손수 지어가며 정 명예회장의 사업을 뒷받침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조 여사를 '내조의 여왕'이라고 불렀다.
장남 정몽진 KCC 회장, 빙그레家와 인연
정몽진 KCC 회장은 홍은진 씨와 1990년 결혼했다. 홍씨는 빙그레의 전신인 대일유업 창업주 고(故) 홍순지 사장의 딸로, 서울대 음대에서 플루트를 전공했다. 두 사람의 만남은 음악을 매개로 이뤄졌다. 평소 오디오로 음악 감상을 즐기던 정 회장에게 사촌형 정몽윤 회장이 홍씨를 소개해 준 것이다.
정 회장 부부는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장녀 정재림(1990) 경영전략부문장 상무는 2019년 그룹에 입사해 KCC의 미래를 이끌 핵심 인물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 명문 여대인 웰즐리대학을 졸업하고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MBA 과정을 마친 정 상무는 약 3조5000억원 규모의 모멘티브 인수합병 과정에 적극 참여해 성과를 인정받았다.
올해 정몽익 KCC글라스 회장이 정재림 상무에게 KCC 보통주 3만5729주를 증여하는 등 승계 작업도 본격화되고 있다. 남동생 정명선(1994) 씨는 1994년생으로 아직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차남 정몽익 KCC글라스 회장, 롯데·한진家와 복합 혼맥
최씨의 언니 최은영 유수홀딩스 대표는 고(故)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과 결혼해 한진가와도 혼맥을 형성했다. 즉, 정몽익 회장을 통해 현대·롯데·한진 3대 그룹이 연결되는 구조다.
하지만 정 회장과 최씨는 32년간의 결혼생활을 마감했다. 정 회장은 2013년 첫 이혼 소송을 제기했으나 2016년 대법원에서 패소했다. 법원은 혼인관계 파탄의 원인이 정 회장에게 있다고 판단했다. 2019년 정 회장이 두 번째 이혼 소송을 제기하자 최씨도 맞소송을 냈고, 2022년 9월 서울가정법원에서 조정 성립으로 이혼이 확정됐다.
논란의 중심에는 정 회장의 사실상 중혼이 있다. 정 회장은 2015년 이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모델 출신 곽지은(1982) 씨와 결혼식을 올려 큰 비판을 받았다. 곽씨는 정 회장보다 16세 연하로 알려졌다. 정 회장은 최씨와의 사이에서 2남 1녀를, 곽씨와의 사이에서 2남을 두어 총 4남 1녀의 자녀를 두고 있다.
3남 정몽열 KCC건설 회장, 서울대 미대 출신과 결혼
정몽열 KCC건설 회장은 형제 중 가장 안정적인 혼맥을 유지하고 있다. 1989년 미국 페어레이디킨슨대학을 졸업한 뒤 1990년 고려화학에 입사했다. 서울대 미대를 졸업한 중소기업 사장의 딸 이수잔(1970) 씨와 결혼해 1남 1녀를 두고 있다.
정 회장은 건설 현장에서 노동자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는 화통한 성격으로 유명하지만, 개인 생활은 조용히 독서를 즐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들 정도선(1995) 씨와 딸 정다인(1996) 씨는 아직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4세 경영 참여와 계열분리 작업
KCC 그룹은 현재 3형제 독자경영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고(故) 정상영 명예회장이 형제 사이 다툼을 막기 위해 구상한 것으로, 2016년 KCC건설 지분 전량을 막내 정몽열 회장에게 증여하면서 별도 경영의 틀을 마련했다.
최근에는 KCC글라스의 주식 대량보유 상황 보고의 대표자가 정몽진 회장에서 정몽익 회장으로 변경되면서 계열분리 작업이 가시화되고 있다. 공정거래법상 완전한 계열분리를 위해서는 특수관계 주식 보유 비중을 상호 3% 미만으로 낮춰야 한다.
한편 정재림 경영전략부문장 상무의 경영 참여가 적극적으로 이뤄지면서 가부장적 분위기로 유명한 범현대가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KCC는 여성등기임원이 단 1명도 없어 2022년 개정된 자본시장법 규정에 미달하는 상황이지만, 정 상무의 활약이 기업 문화 변화의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정상영 명예회장의 손자·손녀 세대인 4세들의 본격적인 경영 참여는 아직 초기 단계다. 하지만 정재림 상무를 필두로 한 젊은 세대의 등장이 KCC 그룹의 미래와 범현대가의 전통적 가풍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주목된다.
32년 결혼생활 정리하면서도 사업적 관계는 유지
KCC 그룹 3형제의 혼맥을 분석해보면 몇 가지 특징이 드러난다. 우선 장남 정몽진 회장과 3남 정몽열 회장은 각각 음악과 미술이라는 예술적 소양을 갖춘 배우자를 선택했다. 정몽진 회장 부인 홍은진 씨는 서울대 음대 플루트 전공자이고, 정몽열 회장 부인 이수잔 씨는 서울대 미대 출신이다. 이는 창업주 정상영 명예회장 부부가 연애결혼을 한 것과 궤를 같이 하는 '자유연애' 전통의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반면 차남 정몽익 회장의 경우는 전형적인 '전략적 혼맥'의 성격이 강하다. 롯데그룹 신격호 명예회장의 외조카와의 결혼은 당시 현대가와 롯데가의 첫 결합으로 재계의 큰 화제였다. 특히 최은정 씨의 언니가 한진해운 조수호 회장과 결혼한 상황에서 정몽익 회장을 통해 현대·롯데·한진 3대 재벌가가 연결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정몽익 회장의 사실상 중혼과 이혼 과정은 KCC 혼맥의 또 다른 특징인 '실용주의'적 접근을 보여준다. 32년간의 결혼생활을 정리하면서도 사업적 관계는 유지하려 했고, 이혼 과정에서도 조정을 통한 합의를 이끌어내며 법정 다툼을 최소화했다.
무엇보다 KCC 혼맥의 가장 큰 특징은 '개방성'이다. 범현대가 중에서도 KCC는 상대적으로 혼맥 선택의 폭이 넓었다. 빙그레 창업가 집안, 독립운동가 후손, 중소기업 사장 딸까지 다양한 배경의 인사들과 인연을 맺었다. 이는 창업주 정상영 명예회장이 형제들과 달리 독립적으로 사업을 일궈온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현재 4세대인 정재림 상무의 등장은 KCC 혼맥사에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전통적으로 남성 중심의 승계가 이뤄져온 범현대가에서 여성 오너의 적극적 경영 참여는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정 상무가 향후 어떤 혼맥을 형성할지, 그리고 그것이 KCC 그룹의 사업 영역 확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재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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