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상법 개정의 핵심은 이사의 충실의무를 기존 '회사'에서 '회사+주주'로 확대한 것이다. 과거 소액주주가 경영진의 업무집행에 이의를 제기하더라도 '회사에 대한 손해'를 입증하기 어려워 실효성이 떨어졌다. 하지만 이제는 주주 가치 훼손 자체가 충실의무 위반 근거가 된다.
특히 인적분할을 통한 지주회사 전환, 자회사 중복상장, 불합리한 계열사간 합병 등 기존 오너 일가의 '전가의 보도'였던 수법들이 주주 충실의무 위반으로 제재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더불어민주당이 추진 중인 '자사주 소각 의무화' 법안도 지주회사들에게는 충격파가 될 전망이다. 신규 매입 자사주는 6개월~1년 내 소각해야 하며, 기존 보유 자사주도 소각 대상에 포함된다. 현재 코스피 상장사 중 자사주 보유비율이 가장 높은 신영증권(53.1%)을 비롯해 롯데지주(32.5%), SK(24.8%), 두산(17.9%) 등 주요 지주회사들이 대규모 자사주 소각 압박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상법 개정이 각 지주회사에 미치는 영향은 천차만별이다. 경영권 분쟁 기업인 한국앤컴퍼니의 경우 조현식 측의 영향력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LS그룹은 다수 자회사의 상장 계획을 재검토해야 할 상황이다. CJ는 올리브영과의 합병에서 PBR 1배 이상에서만 진행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SDS처럼 내부거래 비중이 높은 기업들도 오너 지분 정리 압박을 받을 전망이다.
김수현 DS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상법 개정으로 지주회사들의 구조적 리레이팅이 시작될 것"이라며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주주 충실의무 도입으로 대주주 견제가 강화되면서 PBR 1.0배 달성이 머지않았다"고 밝혔다.
DS투자증권은 이번 상법 개정의 수혜주로 두산(목표주가 93만원), CJ(24만원), 삼성물산(23만원)을 톱픽으로 제시했다. 두산은 AI 가속기 특수와 함께 할인율 축소 효과가, CJ는 올리브영 합병 시나리오가, 삼성물산은 삼성바이오로직스 분할로 인한 대규모 자금 확보 가능성이 주요 투자 포인트다.
김 애널리스트는 "상속증여세 완화가 추가로 이뤄질 경우 본격적인 지주회사 리레이팅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주주 충실의무가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미국식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이 필수라는 지적이다. 현재 한국은 소액주주가 회사 내부 자료에 접근할 수 없어 충실의무 위반을 입증하기 어렵다. 더불어민주당이 추진 중인 한국판 디스커버리 제도가 함께 도입되어야 상법 개정의 취지가 살아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에픽 신규섭 금융·연금 CP / wow@globalep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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