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선필 에프앤가이드 연금 전문위원.
주목할 점은 펀드, ETF 등 실적배당형 상품 투자금액이 75조2천억원으로 전년 대비 무려 53%나 급증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그동안 원리금보장형 상품에만 머물러 있던 퇴직연금 시장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음을 시사한다.
수익률 면에서도 의미 있는 변화가 감지된다. 연간 수익률이 4.77%에 이른 것이다. 최근 5년 평균 2.86%, 10년 평균 2.31%를 크게 상회했다. 특히 실적배당형 상품의 평균 수익률은 9.96%에 달해 원리금보장형과의 격차를 벌려놓았다.
제도별로 살펴보면 더욱 흥미로운 결과가 나타난다. DB형 4.04%, DC형 5.18%, IRP 5.86%로 운용 주체가 회사가 아닌 개인인 DC형과 IRP에서 더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는 개인의 투자 역량과 의지가 수익률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보여준다.
DC형과 IRP 수익률 분위별 분포 현황을 보면 더욱 극명한 차이가 드러난다. 최상위 1분위의 평균 수익률은 DC형 22.7%, IRP 33.2%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반면 최하위 90분위 가입자들의 평균 수익률은 1%에도 미치지 못했다. 같은 제도 안에서도 개인의 투자 접근법에 따라 하늘과 땅 차이의 결과가 나타났다.
이런 통계를 보며 과거 증권사에 근무할 당시 만났던 한 가입자가 떠올랐다. 그 해 주식시장이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도 변변치 못한 성과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DC 수익률은 무려 88%를 기록했다. 신기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그 비결을 물어봤던 기억이 생생하다.
중견기업에 다니는, 40대 초반의 그는 다른 가입자들과는 사뭇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의 성공 비결은 거창한 투자 기법이나 특별한 정보가 아니었다. 오히려 지극히 당연하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세 가지 원칙에 있었다.
첫 번째는 퇴직금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의 차이였다. 필자가 만난 상당수 직장인들은 퇴직금을 금융자산의 '전부'라고 여기며 1%라도 잃어서는 안 되는 불가침의 영역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퇴직금도 그저 투자의 대상이고 자산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이런 인식 전환이 과감한 투자 결정을 가능하게 했다.
두 번째는 끝없는 학습에 대한 의지였다. 퇴근 후 매일 경제 공부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의 시황과 경제 트렌드에 대해 꾸준히 공부했다. 사실 누구나 관심은 많지만 관련 업종 종사자가 아니라면 매일 습관처럼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그는 이를 일상의 루틴으로 만들어냈다.
사실 그가 말한 내용들은 누구나 알고 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투자 방식이었다. 그 역시 자랑거리가 못 된다며 그저 운이 좋았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하지만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다. 단지 운이라고 하기엔 그의 노력이 너무나 체계적이고 지속적이었다.
벤자민 그레이엄은 "투자는 IQ나 통찰력 혹은 기법의 문제가 아닌 원칙과 태도의 문제"라고 했다. 퇴직연금 수익률 분포에서 보이는 극명한 차이는 바로 이 말을 증명하고 있다. 상위 1%에 속한 이들은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올바른 원칙을 세우고 이를 꾸준히 실천했기 때문일 것이다.
퇴직연금은 더 이상 단순히 보관해두는 돈이 아니다. 그것도 엄연한 투자 자산이며, 우리의 노후를 책임질 중요한 수단이다. 1%에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20% 이상의 수익률을 노릴 것인가. 그 선택은 결국 우리의 태도에 달려 있다.
[글로벌에픽 신규섭 금융·연금 CP / wow@globalep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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