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 바라크나눔갤러리에서 열리는 '피카소 인 대구'는 클로드 모네와 파블로 피카소를 한 공간 안에 배치함으로써 그 접점을 드러낸다. 인상주의의 대표 화가인 모네가 빛의 인상을 화면에 옮겼다면, 피카소는 사물을 해체하고 재구성함으로써 보는 방식을 다시 세웠다.
모네의 수련 연작은 사물의 윤곽을 지우고 빛과 색의 변화에 집중한다. 수면 위에 놓인 연꽃은 분명한 외곽선을 갖지 않는다. 대신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색채의 층위가 화면을 채운다. 파랑과 보라, 초록과 분홍이 겹치며 순간의 인상을 기록한다.
빛은 모네의 화면에서 중심이 된다. 사물은 빛 속에서 존재하고, 빛은 사물의 형태를 흔든다. 관람객은 화면 앞에서 형태보다 분위기를 먼저 느낀다. 색은 경계를 넘어 퍼지고, 화면은 고정된 구조를 거부한다. 인상주의는 그렇게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을 이동시켰다.
그 옆에 놓인 피카소의 작품은 전혀 다른 긴장을 만들어낸다. 도라 마르 초상은 얼굴을 여러 시점으로 분절한다. 코와 눈은 한 방향을 향하지 않고, 색면은 서로 충돌한다. 피카소는 하나의 대상을 하나의 시점으로 고정하지 않는다. 대신 여러 각도를 한 화면에 중첩시킨다.
겉으로 보기에는 모네와 피카소 사이에 큰 간극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모네가 윤곽을 흐리며 시각의 중심을 흔들었다면, 피카소는 그 흔들림을 구조적으로 확장했다. 인상주의가 빛을 통해 세계를 새롭게 보았다면, 입체주의는 구조를 통해 세계를 다시 구성했다. 두 흐름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재현의 틀을 넘어섰다.
이번 '피카소 인 대구'는 이러한 연속성을 공간 안에서 체험하게 한다. 모네의 화면 앞에서 색채의 진동을 느낀 뒤, 피카소의 초상 앞에 서면 형태의 긴장이 다가온다.
모네의 회화는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을 전환시켰다. 반 고흐는 그 시각에 감정을 더했고, 피카소는 구조를 더했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흐름을 단순한 연대기 대신 화면의 병치를 통해 드러낸다. 서로 다른 시대의 작품이 나란히 놓이며 시간의 간극이 압축된다.

사진=작품 점검중인 꾸바아트센터 차효준 대표
이번 전시는 작품 사이의 거리를 의도적으로 가깝게 둔다. 동선을 따라 이동하다 보면 모네의 부드러운 화면과 피카소의 날카로운 구조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한쪽에서는 빛이 퍼지고, 다른 쪽에서는 면이 충돌한다. 두 화면은 서로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비를 통해 각자의 특성을 더욱 또렷하게 드러낸다.
꾸바아트센터 차효준 대표는 “이번 전시는 특정 사조를 강조하기보다 시선의 변화에 주목했다”며 “모네에서 시작된 감각의 전환이 피카소에서 구조적 전환으로 이어졌다는 점을 공간 안에서 느끼게 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모네의 화면을 오래 바라보면 색의 층이 눈에 들어온다. 피카소의 화면을 오래 바라보면 면의 긴장이 드러난다. 두 화가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해체했다. 하나는 빛을 통해, 다른 하나는 구조를 통해. 그러나 그 목적은 ‘익숙한 세계를 새롭게 보게 하는 일’로 같았다.
'피카소 인 대구'는 그 전환의 순간을 대구라는 공간 안에 펼쳐 놓는다. 인상주의의 색채와 입체주의의 구조가 나란히 놓이며, 근현대 미술의 흐름이 한눈에 들어온다. 연대기적 설명보다 화면의 밀도가 먼저 다가온다.
대구에서 만나는 이 교차의 순간은 단순한 병치가 아니다. 미술사가 이동해 온 방향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빛과 구조가 서로를 비추며, 세계를 보는 또 다른 시선을 제시한다.
'피카소 인 대구'는 그렇게 두 거장의 화면을 통해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으며, 어떤 방식으로 보고 있는가. 모네의 색채와 피카소의 구조는 그 물음에 각기 다른 답을 내놓는다. 그 답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근현대 미술의 결이 또렷하게 드러난다.
[글로벌에픽 이수환 CP / lsh@globalep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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