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민사원 변호사
일반적으로 재개발, 재건축은 조합을 결성해서 진행하는 경우가 많고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는 조합원들이 모이는 총회를 개최한다. 총회에서 어떤 안건을 통과시키려면 조합원 과반수 출석에 또 출석 조합원 과반수의 찬성이 필요한데, 멀리 살거나 생업에 종사하다 보니 시간을 내기 어려운 등 각자의 사정으로 직접 참석하지 못하는 조합원들은 서면결의서를 조합에 보내 총회 안건의 찬반을 표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서면결의서가 정보공개 대상이냐 아니냐를 두고 논란이 되었던 것이 서면결의서에는 어떤 조합원이 어떤 안건에 대한 찬반 여부가 적혀있으니 다른 조합원이 그걸 확인하는 것은 비밀투표의 원칙을 훼손한다고 볼 수도 있다. 또한 서면결의서에는 어떤 조합원이 작성했는지 확인하는 과정에서 주소나 전화번호 등 개인정보가 노출될 수도 있다.
이로 인해 어떤 안건에 대해 이해관계를 가진 조합원들이 자기들과 반대되는 투표를 한 조합원들을 서면결의서를 보고 찾아가거나 전화를 걸어 회유, 협박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과거 대법원은 조합이 어떻게 의사결정을 했는지 알기 위해서는 서면결의서를 확인할 필요가 있으니까 ‘관련 자료’에 해당한다고 보았고, 당시 도시정비법 시행령에는 정보공개를 할 때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 개인정보를 제외하고 공개하라는 규정도 있으니 개인정보 보호에도 문제가 없다고 판단해(대법원 2012. 2. 23. 선고 2010도8981 판결) 서면결의서에 대한 논란을 정리했다.
오히려 지금의 도시정비법에는 주민등록번호를 제외하라는 규정은 있어도 이름, 주소는 제외하라고 하지 않고 있는데, 지난해 대법원은 한발 더 나아가 ‘조합원의 전화번호도 의무조항에 따른 열람·복사의 대상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판단(대법원 2021. 2. 10. 선고 2019도18700 판결)하기도 했다.
법원이 이런 판단을 해온 데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는데, 재개발·재건축이 워낙 막대한 비용이 드는 사업이다 보니 비리가 발생할 위험이 높고, 부정이 터지면 사회적인 피해도 그만큼 크다 보니 정보공개의무를 강하게 부과해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조합원의 알 권리를 보장하려는 취지가 반영된 것이다.
그런데 올해 1월, 대법원은 판결에서 그동안과 사뭇 다른 태도를 보였는데, 해당 사건은 조합도 설립되기 전인 추진위원회 단계에서 일어난 경우로 재개발, 재건축 구역에 토지, 건물 소유자들이 추진위원회를 상대로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그 공개 대상에는 주민총회 속기록과 자금수지 보고서가 있었고, 이것을 추진위원회가 공개하지 않으면서 법적 다툼으로 번진 것이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도시정비법 혹은 그 위임에 따른 시행령에 명문의 근거 규정 없이 정비사업의 투명성·공공성 확보 내지 조합원의 알 권리 보장 등 규제의 목적만을 앞세워 각호에 명시된 서류의 ‘관련 자료’의 범위를 지나치게 확장하여 인정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가 요구하는 형벌법규 해석원칙에 어긋난다고 판단(대법원 2022. 1. 27. 선고 2021도15334 판결)하면서,
속기록은 공개해야 된다는 명문의 규정도 없고, 반드시 속기록이 있어야 어떤 회의 내용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관련 자료로 해석해서 공개해야 된다고 볼 수 없고, 자금수지 보고서에 대해서도 역시 같은 논리로 관련 자료로 해석할 수 없다고 보았다.
이에 대해 법무법인혜안 재개발재건축전담 민사원 변호사는 “해당 판결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속기록, 자금수지 보고서를 관련 자료가 아니라고 판단했다는 점이 아니라, 정보공개청구의 결과 조합 임원은 형사 처벌을 받을 수도 있으니 함부로 ‘관련 자료’를 넓게 해석해 조합 임원이 부당하게 처벌받아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는 점이다. 그동안은 정보공개청구의 순기능에 대해서만 강조를 해왔다면, 비로소 그 역기능에 대한 경계를 시작했다고 개인적으로 평가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이 판결 하나만을 근거로 ‘관련 자료’가 아니라고 확정적으로 판단해 공개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곤란하지만 조합 입장에서는 도저히 말도 안 되는 정보공개청구라고 생각된다면, 공개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대응해 볼 만할 여지가 생겼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이수환 글로벌에픽 기자 epic@globalep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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