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조3천억원)에 인수하기로 발표한 지 불과 4개월 후, 공정거래위원회가 DB그룹의 김준기 창업회장을 위장 계열사 은폐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기 때문이다.
이에 국내 보험업계의 해외 보험사 인수 최대 규모로 평가 받았던 이번 빅딜이 DB손보의 신뢰와 투명성 저하로 인해 좌초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미 포테그라 ‘우량 자산’ vs DB그룹 ‘투명성 의심’
미국 보험사인 포테그라는 충분히 검증된 기업으로 알려졌다. 1978년 미국 플로리다주 잭슨빌에 설립된 이 글로벌 보험그룹은 거의 반세기 동안 보험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특화보험(51%), 신용·보증보험(36%), 보증 등 보험 관련 서비스(13%)로 틈새시장 위주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있다.
2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포테그라는 안정적인 성장성과 안정성을 보여준다. 연간 원수보험료는 약 4조4천억원, 순이익은 약 2천억원으로 2015년 이후 연평균 15.2% 성장했으며 최근 5년간은 21% 성장했다. 합산비율 90%, 지급여력비율 440%로 안정적이고, 신용등급은 AM Best A-, ROE는 26.0%로 DB손보의 21%를 상회하는 수준이다.
IB업계에서는 인수가격도 시장 기준에 부합하다는 의견을 보인다. 2조3천억원의 인수가격 기준 주가순자산비율과 주가수익비율은 각각 2.66배, 11.9배 수준으로, 미국 손해보험 업종 대표 회사들의 2.49배, 12.98배와 비교하면 오히려 합리적인 수준이라는 평가다. DB손보 입장에서는 충분히 검증된 우량 자산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이번 초대형 인수합병(M&A) 문제는 인수 대상이 아니라 인수자 측에서 발생했다. 지난 8일, 공정거래위원회는 DB그룹 김준기 창업회장을 고발했다.
김준기 창업회장, 15년 위장계열사 은폐와 의도적 정황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김 창업회장이 동곡사회복지재단과 그 산하 회사 등 재단 2개와 회사 15개를 DB그룹 계열사 현황에서 누락한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은폐가 최소 2010년부터 현재까지 15년 이상 지속되어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2016년부터는 이들 회사를 전담 관리하는 직위까지 설치해 본격적인 지배력을 행사했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적발된 위장계열사는 삼동흥산, 빌텍, 뉴런엔지니어링 등 15곳에 달한다.
공정위 조사 결과에 따르면, DB 측은 이들을 통해 DB하이텍의 경영권을 보완하고 창업회장의 개인 자금 조달에 활용했다. 2021년 창업회장은 재단회사인 빌텍으로부터 220억원을 대여받고 이를 DB하이텍 지분 취득에 사용했다.
더욱 문제적인 것은 의도적인 은폐 정황이다. 공정위는 2023년 작성된 DB 그룹 조직도에 재단 계열사를 점선으로 표시했고 "관계사 배포시에는 동곡재단 부분을 삭제하라"는 명시적 지시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는 DB 측이 규제당국의 감시를 의식해 의도적으로 정보를 숨겨온 것으로 관측된다.
공정거래법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등의 지정을 위한 자료를 허위로 제출하는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5천만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공정위가 허위 자료 제출을 이유로 그룹 총수를 고발한 것은 지난해 8월 농심 신동원 회장을 고발하기로 한 후 약 6개월 만이다.
DB손보 6.07% 보유 김준기 창업회장…대주주 적격성 논란
이번 김준기 창업회장의 고발 건이 터지자, 국내 금융당국은 다소 신중한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2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 6일 DB손보는 금융당국에 포테그라 인수 관련한 자회사 편입 승인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어 금감원이 지급여력과 계약자 보호에 미치는 영향, 자본 적정성, 해외사업 리스크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김준기 창업회장의 고발 건으로 인해 금융당국은 단순한 재무 검토를 넘어 DB그룹 전체의 지배구조와 거버넌스 투명성도 검토할 것으로 관측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신뢰가 생명인 금융회사에서 이런 논란이 발생한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단순히 재무지표만이 아니라 기업의 투명성, 거버넌스 체계, 자금 흐름의 명확성 등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포테그라 자체가 우량 자산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DB손보가 인수 자금을 어떻게 조달했는지, DB그룹 내부 거래의 투명성이 있는지, 지배력 유지를 위한 또 다른 '숨겨진 구조'는 없는지를 집중적으로 조사하게 될 것으로 점쳐진다.
지난 20일 현재 DB손보의 지분 구조를 보면 김준기 창업회장(6.07%)은 김남호 회장(9.19%)에 이은 주요주주에 해당해, 대주주 적격성 논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법조계 인사는 “김준기 회장이 최대주주는 아니지만, 2대주주이고 DB손보의 경영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측면에서 대주주 적격성 관련한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으면 금융사 인수는 불가능한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실적 악화와 신뢰 부족의 '이중 악재'
DB손보의 최근 실적이 악화되는 와중에 창업회장의 고발 건이 터지면서 타이밍도 나쁘다는 평가다. DB손보의 지난해 연간 보험손익은 1조359억원으로 전년 대비 36.0% 급락했고, 당기순이익도 1조5천349억원으로 2024년 대비 13.4% 감소했다. 특히 자동차보험은 보험료 인하와 할인특약 확대 영향으로 547억원 적자를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고, 장기보험 손익도 1조758억원으로 20.1% 감소했다.
보험업계는 DB손보의 2025년 상반기 말 지급여력비율은 213.3%였으나, 포테그라 인수 후 이 비율이 15~20%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에 시장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2조3천억원의 거액을 들여 해외 보험사를 인수하려는 DB손보의 승부수가 조기에 마무리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더욱이 창업회장이 위장계열사를 통해 경영권을 조종해온 정황이 드러난 만큼, 그룹 전체의 지배구조와 거버넌스 투명성에 대한 의문이 계속될 것이란 의견이 우세하다.
행동주의펀드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도 공정위 고발 직전인 지난 6일, DB손보 이사회에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공개서한을 발송했다. 얼라인은 DB손보 지분 약 1.9%를 보유하고 있으며, DB손보의 저평가 원인으로 불투명한 기업 지배구조를 제시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포테그라 자체는 우량 자산이지만, DB손보의 거버넌스 투명성 문제로 인해 당국의 인수 승인이 예상보다 상당히 길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금융당국의 고강도 검사, 대주주 적격성 심사 강화, 신사업 제약 등 추가 문제가 발생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미국은 주(State)별 보험청의 승인이 까다로우며 인수자의 지배구조 투명성 및 도덕성을 엄격히 따진다”며 “이번 공정위의 창업회장 고발 사실은 미국 현지 규제 당국의 경영권 변경 승인 심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불확실한 미래, 남은 시간은 4개월
금융권에서는 포테그라 자체는 우량 자산이지만, 인수자인 DB손보의 거버넌스와 투명성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만큼, 최종 인수까지는 당초 예상보다 상당 기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보험업계에서는 포테그라 인수의 최종 결과는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 중 하나가 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시나리오 1: 강한 조건부 승인 - 금융당국이 배당 제한, 정기 점검 강화, 투명성 공시 강화, 분기별 보고 의무화 등 엄격한 조건을 부과하는 경우다. 이 경우 인수는 진행되지만 DB손보는 상당한 규제 부담을 안게 될 가능성이 높다. 금융당국이 포테그라 인수를 DB그룹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레버리지'로 사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보험사 관계자는 “인수를 원한다면 먼저 그룹과 DB손보의 거버넌스를 투명하게 개선하라는 요구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시나리오 2: 심사 기간 연장 - 금융당국이 추가 자료 요구, 추가 심사 등으로 심사 기간을 장기화하는 경우로, 특히 '심사 중단 제도'가 발동될 가능성도 있다. 대주주에 대한 형사 소송이나 수사가 진행 중일 때, 그 결과가 인가 여부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되면 심사를 잠시 멈출 수 있는 제도로, 이 경우 지분 취득 예정일인 5월 31일까지 승인이 나지 않을 수 있다.
시나리오 3: 거부 또는 재협상 - 금융당국이 심사를 거부하거나, DB손보가 먼저 인수를 철회하고 재협상을 요구하는 경우로, 이 경우 2조3천억원의 거래가 무산되거나 조건이 크게 변경될 것으로 보인다 .
시장에서는 현재까지의 진행상황을 고려하면 시나리오 1이나 2가 현실화될 것으로 점치고 있다. DB손보의 포테그라 인수는 진행될 가능성은 높지만, 금융당국이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조건을 제시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에 김준기 창업회장의 검찰 수사가 어떻게 진행될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DB손보는 시장과 금융당국의 신뢰 회복이 최우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오는 5월 31일의 지분 취득 예정일까지 약 4개월이 남은 가운데, 창업회장의 수사 결과와 금융당국의 심사 결과, DB손보의 신뢰 회복 노력에 따라 2조3천억원의 거대한 빅딜도 마무될 것으로 관측된다.
[글로벌에픽 성기환 CP / keehwan.s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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