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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재구성] 골프존 8년 법정 분쟁 전말

대법원 “스크린 페어웨이도 저작물” … 코스 설계사 손 들어줘

안재후 CP

2026-02-26 15:25:37

[사건의 재구성] 골프존 8년 법정 분쟁 전말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2018년 5월. 국내외 골프코스 설계사들이 법정으로 향했다. 오렌지엔지니어링, 송호골프디자인, 미국의 골프플랜 인코퍼레이션 등 설계업체들은 스크린골프 업체 골프존을 상대로 저작권 침해금지 및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청구액은 약 307억 원대였다.

설계사들의 주장은 명확했다. 각 골프코스의 설계도면은 설계자의 창조적 개성이 반영된 창작물이며, 골프존이 이를 허가 없이 스크린골프 시뮬레이션용 영상으로 구현했다는 것이었다. 골프존이 개발한 스크린골프 시스템은 전 세계 명문 골프장의 코스를 거의 그대로 재현해 스크린골프 운영업체에 제공하고 있었다. 설계자들은 자신의 창조물이 무단으로 상업화되고 있다고 본 것이다.

골프존은 전면 반박했다. 골프코스는 골프 경기 규칙과 국제적 기준, 부지 지형, 이용자 편의와 안전 같은 기능적 제약들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지, 저작권으로 보호받을 창작물이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기능적 결과물일 뿐 공공성이 강해 저작권 보호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논리였다.

재판 쟁점은 단순했으면서도 근본적이었다. 과연 골프코스를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저작물로 볼 수 있는가.
1심: 창작성이 인정되다
2021년 12월. 서울중앙지방법원의 1심 판결이 나왔다. 재판부는 설계사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설계사 측 '일부 승소'였다.

1심 재판부는 골프코스가 인간의 사상과 감정이 표현된 결과물이라고 봤다. 설계자가 이용자, 즉 골퍼가 코스를 공략하며 느끼는 재미와 난이도, 그리고 경험하게 될 풍경까지 고려해 설계한다면, 그 과정에서 설계자의 창조적 개성이 드러난다는 해석이었다. 골프존이 실제 코스를 거의 그대로 재현해 스크린골프 영상으로 만든 행위는 명백한 저작권 침해라고 판단했다.

이 판결은 게임, 스크린골프, 콘텐츠 산업계에 파장을 일으켰다. 현실의 설계물이 가상공간에서 저작권으로 보호될 수 있다는 선례가 생긴 것이었다. 설계사들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고, 업계는 긴장했다.

2심: 기능적 결과물일 뿐이다
그러나 골프존은 항소했고, 2024년 2월 1일 서울고등법원의 2심 판결은 설계사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법원이 완전히 반대 입장을 취한 것이었다. 골프존이 전부 승소했다.

2심 재판부는 골프코스 설계의 현실을 강조했다. 골프 규칙, 국제적 기준, 이용자의 안전과 편의, 골프장의 운영 용이성, 부지의 지형, 홀의 수 등 다양한 제약이 골프코스 설계에 작용한다는 것이었다. 개별 홀의 그린 형태, 배치, 조합이 다른 홀과 다르다 해도, 그것은 난이도와 재미, 전략 같은 기능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선택일 뿐이라고 봤다. 다시 말해, 차별성이 기능을 위한 것이지 창작의 영역에 들어서지 못한다는 판단이었다.
2심 판결의 핵심은 이것이었다. "각 골프코스는 건축저작물로서 창작성이 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 설계사들의 청구는 모두 기각되었다. 설계사들은 다시 한번 절망을 맛봤다. 1심에서 얻은 희망이 2심에서 산산조각 났다.

대법원: 제약 속에도 표현은 존재한다
2026년 2월 26일. 대법원의 상고심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는 2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환송했다. 이번에는 설계사들이 다시 기회를 얻었다.

대법원의 판단은 2심의 논리를 정면으로 거부했다. 제약과 창작성은 양립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골프코스 설계자가 규칙과 지형의 제약을 고려하면서도, 코스를 이루는 여러 구성요소를 다양하게 선택하고 배치하고 조합함으로써 다른 코스와 구별되는 창조적 개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은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어떤 홀을 어디에 둘 것인지, 페어웨이와 해저드, 벙커, 그린을 어떻게 배치하고 조합할 것인지, 전체 코스의 흐름과 전략적 동선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 같은 선택 영역에서 설계자는 창조적 자유도를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대법원은 더 나아가 저작물성 판단의 기준을 제시했다. 구성 요소의 선택, 배치, 조합이 단순히 남의 것을 모방한 것이거나 누가 하더라도 같거나 비슷하게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닌 이상, 설계도면에는 창작자의 독자적인 표현이 담겨 있으며 이는 기존 골프코스와 구별되는 창조적 개성을 가진다고 보아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스크린골프 화면 속의 골프코스도, 그 설계도면도 저작권 보호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결론이었다.

저작권의 경계가 움직인다
이 판결은 단순한 사건 판단을 넘어선다. 저작권 지형 자체가 움직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건축과 조경, 골프코스 같은 설계 기반의 공간물이 일정 수준의 창조적 구성을 갖춘다면 저작권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는 방향성이 확인된 것이다. 게임사, 스크린골프 업체, 메타버스 플랫폼 같은 콘텐츠 산업이 현실의 공간과 코스를 가져와 구현할 때 설계자와의 권리 정리가 필수가 될 수 있다는 신호였다.

물론 남은 과제도 있다. 어느 정도의 차별성과 개성이 있어야 저작물성을 인정할 것인가 하는 구체적 기준은 여전히 불명확하다. 손해액 산정은 어떻게 할 것인가, 라이선스 모델은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기존 계약 관계는 어떻게 재정비할 것인가 하는 실무 문제들이 쌓여 있다.


법정 속의 18홀
8년의 소송 과정은 설계자들에게는 3막의 드라마였다. 1심에서 승리하고, 2심에서 패배하고, 대법원에서 재기의 기회를 얻었다. 그 사이 골프존은 시장 변화를 겪었고, 업계는 불안정함 속에서 관망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결이 보여주는 것은 명확하다. 규칙과 지형, 기능적 제약으로 빼곡하게 채워진 18홀의 지도 위에도, 법원은 여전히 '창작자의 서명'을 읽어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스크린 속 골프코스를 둘러싼 이 분쟁은 결국 묻고 있다. 우리가 매일 소비하고 경험하는 수많은 디지털 복제물의 '처음 설계자'를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는가. 그리고 창작성의 경계는 정말 어디에 있는가. 이 판결이 그 질문에 던진 답은 단호했다. 제약 속에도 표현은 존재하고, 그 표현은 보호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제 사건은 다시 서울고등법원으로 돌아간다. 이번에는 구체적으로 어느 설계, 어느 코스가 저작권 침해인지, 손해액은 얼마인지를 가려내야 한다. 법정의 18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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