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제공 SK)
이는 단순한 수사적 표현이 아니었다.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과 보호무역주의 강화, 지정학적 위기 심화 등 대격변 시대를 맞아 그룹의 생존을 위한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절박한 인식의 발로였다. 최태원 회장은 구원투수로 사촌 동생인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을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에 임명하고 SK그룹 전반의 리밸런싱을 지휘하도록 했다.
과감한 구조조정과 선택적 집중
2023년 12월 최창원 의장 취임과 함께 본격화된 SK그룹의 리밸런싱은 명확한 원칙 하에 진행되고 있다. 사업 재편의 핵심 방향은 △이익을 내는 사업도 미래 성장성이나 계열사 간 시너지가 없으면 과감히 매각하고 △중복 사업은 통합하며 △각 계열사마다 자생력을 갖출 수 있도록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것이다.
계열사 수도 대폭 축소되었다. 2024년 219개까지 늘어난 계열사는 2025년 5월 기준 198개로 21개 감소했다. 이는 과거 SK그룹의 무분별한 M&A 전략에 대한 뼈저린 반성의 결과다.
중복사업 정리와 시너지 극대화
리밸런싱 과정의 핵심은 중복사업의 통합을 통한 시너지 극대화였다. SK브로드밴드가 SK C&C 판교 데이터센터를 인수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8개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SK브로드밴드에 그룹 데이터센터 사업을 집중시켜 경쟁력을 강화했다.
또한 SK에코플랜트가 SK머티리얼즈 산하 반도체 소재 자회사 4곳(SK트리켐, 레조낙, 머티리얼즈제이엔씨, 머티리얼즈퍼포먼스)을 편입해 반도체 공장 시공부터 소재까지 아우르는 종합 서비스 회사로 도약할 발판을 마련했다.
알짜 자산 매각을 통한 자금 확보
이러한 매각을 통해 지금까지 4조4459억원을 확보했으며, 현재 진행 중인 SK실트론(약 5조원 규모), 리뉴원·리뉴어스 매각이 완료되면 추가로 5조원의 현금을 확보하게 된다. 1년 6개월 만에 총 10조원에 달하는 미래 투자 자금을 마련하는 셈이다.
SK하이닉스 중심의 미래 투자 전략
확보된 자금은 인공지능(AI)과 에너지 사업을 양대 축으로 하는 미래 사업에 집중 투입될 예정이다. 투자의 중심축은 고대역폭메모리(HBM) 호황으로 실적이 급성장한 SK하이닉스가 맡는다.
SK하이닉스의 2024년 영업이익은 23조4673억원을 기록했으며, 2025년에는 36조1241억원(증권사 추정치)으로 더욱 증가할 전망이다. 현재 SK그룹 전체 이익에서 SK하이닉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75%에 달할 정도로 의존도가 높아진 상황이지만, 이는 동시에 강력한 투자 엔진 역할을 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2030년까지 82조원을 마련해 반도체 밸류체인과 AI 인프라 사업 등에 투입할 계획이다. 과거 투자 여력과 상관없이 각 계열사 CEO 중심으로 진행되던 M&A와는 확연히 다른 접근이다.
SK그룹은 기업가치제고 계획을 통해 2026년 자기자본이익률(ROE) 8%, 2027년 ROE 10%를 목표로 제시했다. 포트폴리오 리밸런싱과 비핵심 자산 매각을 통해 이를 달성하겠다는 계획이다.
또한 SK그룹은 사업 재편과 운영 효율 개선을 통해 2027년까지 80조원의 투자 재원을 마련할 방침이다. 중복 사업의 과감한 통합과 자회사 간 시너지 극대화를 통해 고정비 구조를 줄이고, 미래 유망 사업에 자본을 집중 투입할 수 있는 체질로 바꾸는 것이 핵심이다.
체질 개선 통한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 구축
SK그룹의 리밸런싱은 단순한 구조조정을 넘어 근본적인 체질 개선 작업으로 평가된다. 한국신용평가는 "중·단기적으로 재무구조 개선 추세가 지속될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한국신용정보는 "현금 창출력이 우수한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신규 사업 투자가 진행되고 있다"며 선택과 집중 전략이 성공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물론 여전히 과제는 남아있다. SK하이닉스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 2차전지 사업의 부진 등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다. 하지만 지난 1년 6개월간의 성과를 볼 때, SK그룹이 '서든데스' 위기를 넘어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최창원 의장이 이끄는 리밸런싱 작업이 향후 어떤 추가적 성과를 낼지, 그리고 SK그룹이 AI와 에너지 중심의 미래 산업에서 어떤 위치를 점하게 될지 주목된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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