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경제신문이 단독 입수한 윤동한 회장과 윤상현 부회장, 윤여원 대표가 2018년 9월 체결한 3자 간 합의서에 대해 법조계는 대체로 ‘부담부 증여’로 보기 어렵다는 해석을 내놨다고 전해졌다. 이는 콜마그룹 경영권 분쟁의 향후 전개 방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부담부 증여란 무엇인가
‘부담부 증여’는 수증자가 증여를 받는 동시에 일정한 부담, 즉 일정한 급부를 하여야 할 채무를 부담할 것을 부수적으로 부관(조건)으로 하는 증여계약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한 무상 증여와 달리 조건부 성격을 갖는다. 일반적으로 부동산을 증여할 때 전세보증금이나 주택담보대출과 같은 부채를 포함해서 물려주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다.
단순 협조와의 결정적 차이점
반면 단순 협조는 법적 구속력이 약한 권고나 지원 약속에 불과하다. 콜마 합의서의 핵심 조항을 살펴보면 이러한 차이가 명확해진다. 합의서 2조 3항에 따르면, '윤상현은 한국콜마홀딩스 주식회사의 주주이자 경영자로서 윤여원이 윤동한으로부터 부여받은 콜마비앤에이치의 사업경영권을 적절히 행사할 수 있도록 적법한 범위 내에서 지원 혹은 협조하거나 한국콜마홀딩스로 하여금 지원 혹은 협조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법조계는 이 조항이 ‘부담부 증여’로 보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한 경영권분쟁 전문 변호사는 "’부담부 증여’가 성립하려면 합의를 위반했을 경우 어떻게 한다는 내용이 있어야 되는데 이 합의서에는 그와 같은 내용이 전혀 없다"며 "특히 합의서에 언급된 '지원', '협조' 등의 표현은 ‘부담부 증여’라고 보기에는 약하다"고 지적했다.
윤상현 부회장 측의 반격 논리
윤상현 부회장 측은 합의서가 오히려 자신들의 경영 개입에 정당성을 부여한다고 주장한다. 합의서 2조 4항은 '윤여원은 콜마비앤에이치의 사업경영권을 행사함에 있어, 신의성실의 원칙에 입각해 콜마비앤에이치는 물론 나머지 당사자들과 한국콜마홀딩스 및 그 계열회사들의 이익을 해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고 명시했다. 윤 부회장이 콜마비앤에이치의 실적 부진을 이유로 내세우며 이사회 개편을 주장해온 상황에서 '이익을 해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는 부분을 실적과 기업가치로 연결 지을 수 있는 부분이다.
윤여원 대표 측의 강력 반박
반면 윤여원 대표 측은 합의서가 남매 공동경영 체제를 보장하는 약속이라고 강조한다. 윤여원 대표 측은 "현 남매 공동경영 체제는 창업주인 윤동한 회장 의중에 따른 것"이라며 "윤 회장과 부회장, 윤 대표가 과거 체결한 경영 관련 합의사항을 윤 부회장이 스스로 파기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윤여원 대표는 "콜마비앤에이치는 지난해 연결 기준 6156억원의 사상 최대 매출을 달성했다"며 "이는 독립 경영 첫 해에 이뤄낸 성과로, 지주사의 지적은 시장 흐름을 무시한 왜곡된 주장"이라고 정면 반박했다. 콜마비앤에이치는 최근 고부가가치 제형 및 신소재 기반 제품 확대, 중국·유럽·일본 등 수출 시장 다변화, 세종3공장 가동률 상승에 따른 고정비 부담 완화 등에서 진전을 이루고 있다고 밝히며 실적 개선을 강조했다.
법원 판단에 따른 두 가지 시나리오
만약 법원이 합의서를 ‘부담부 증여’로 인정한다면, 윤동한 회장의 입장이 강화된다. 이 경우 윤상현 부회장이 합의서 상의 '협조 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증여를 해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다. ‘부담부 증여’에서는 부담의무 있는 상대방이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할 때에는 비록 증여계약이 이미 이행되어 있다 하더라도 증여자는 계약을 해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판결이 나올 경우 윤상현 부회장의 콜마홀딩스 지분 31.75% 반환 가능성이 높아지고, 윤여원 대표의 콜마비앤에이치 경영권이 강화되며, 윤동한 회장의 중재자 역할이 복원될 것으로 예상된다.
반대로 합의서가 단순한 협조 약속으로 판단된다면, 윤상현 부회장의 주주권 행사에 정당성이 부여된다. 윤상현 부회장 측은 "콜마비앤에이치 임시 주주총회 소집 청구나 소집 허가 신청은 상법에 따라 보장된 주주권에 따른 정당한 권리 행사"라며 "이를 가족 간 합의서를 근거로 제한하려는 것은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이 경우 윤상현 부회장의 콜마비앤에이치 경영 개입이 정당화되고, 그룹 차원의 통합 경영 체제 구축이 가능해지며, 윤여원 대표의 경영 독립성은 제약을 받게 된다.
가족 관계라는 특수성이 변수
한 변호사는 "부모와 자식 간이 아니라면 이 같은 합의서에 기초한 주식반환청구 소송은 당연히 기각 될 것"이라면서도 "이 건은 부모와 자식이기 때문에 재판부가 합의서와 별개로 여타 정황에 관심을 둘 여지가 있다"고 해석했다. 이는 가족 관계라는 특수한 상황이 법원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윤 부회장이 윤 대표의 사업경영권 행사를 지지·협조해야 한다'는 부분을 법원이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 가족기업에서 신의성실 원칙이나 가족 간 신뢰관계가 일반적인 상사관계와 다르게 적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부자 독대로 화해 분위기 조성
최근 윤 회장과 윤 부회장은 지난 12일 서울 모처에서 단둘이 만났다. 이번 만남은 윤 부회장이 직접 아버지인 윤 회장에게 요청하면서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콜마그룹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회장과 부회장의 비즈니스적 자리가 아닌, 아버지와 아들로서 따뜻한 대화가 오가는 훈훈한 자리였다"며 "윤 회장과 윤 부회장이 좋은 대화를 나눴고 대화 이후 기분이 좋아진 윤 회장이 '밥 먹고 가라'고 권유하며 식사 자리까지 이어졌다"고 전했다.
이번 독대로 대화의 물꼬를 튼 부자는 향후에도 추가 면담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윤 부회장은 최근 경영권 분쟁이 심화하자 아버지와 대화를 통해 사태 해결을 모색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화해 분위기가 법적 분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 가족기업 승계 모델 새로운 판례 될까
콜마그룹 경영권 분쟁의 핵심은 결국 가족기업의 지배구조와 경영 승계 과정에서의 합의 이행 문제다. 부담부 증여와 단순 협조의 구분은 단순한 법리 해석을 넘어 한국 기업사에서 가족 간 경영 승계 방식의 새로운 판례를 만들 수 있다.
현재 지분 구조를 보면 윤 부회장은 지배구조의 꼭지점에 있는 지주사 콜마홀딩스 지분 31.75%를 보유하고 있다. 윤동한 회장 5.59%, 윤여원 사장 7.60%, 남편 이현수씨 3.02% 지분을 다 합쳐도 16.21%에 불과해 윤 부회장의 지분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할 때, 법원의 판단이 그룹의 미래 지배구조를 결정하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주식반환청구소송의 첫 변론기일이 10월 23일로 잡히는 등 갈등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콜마그룹의 경영권 분쟁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부담부 증여와 단순 협조의 법적 경계가 어떻게 설정되느냐에 따라 한국 가족기업의 경영 승계 관행에도 중요한 변화가 예상된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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