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한샘 알케미랩 대표.
어느 날 집에 콜라 한 병을 사 두었는데, 둘이서 번갈아 마시겠다며 치열하게 다투기 시작했다. 한 모금 마시는 동안에도 “이제 내 차례야”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별것 아닌 일로 서로 죽일 기세라니 웃기면서도 안쓰러웠다. 이 싸움은 내가 이렇게 말할 때까지 이어졌다. “돈 줄 테니 같이 가서 콜라 하나 더 사 와라.” 거짓말처럼 둘은 다시 사이가 좋아졌다.
아내는 기아대책이라는 NGO에서 일한다. 이 단체의 비전은 이름 그대로 지구촌 기아 퇴치다. 그런데 기술이 이렇게 발전한 시대에도 여전히 13분마다 1명이 굶어 죽는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는 인류가 먹고도 남을 만큼의 식량을 이미 생산하고 있지만, 분배 불균형과 전쟁, 기후 위기로 인해 수억 명이 굶주린다. 한쪽에서는 음식물 쓰레기를 돈 내고 버리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사람이 굶어 죽는다. 납득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왜 우리는 이렇게 죽을 힘을 다해 경쟁할까? 대부분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사실 우리의 경쟁은 ‘죽일 기세’다. 이 표현의 순화된 말이 바로 ‘열심히’다. 열심히 사는 것은 우리 문화에서 늘 미덕이었지만, 도가 지나친 열심은 결국 타인의 기회를 앗아간다. 80억 인구가 모두 더 열심히 살다 보면 필연적으로 도태되는 이들이 생긴다. 도태되지 않으려면?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 모두가 더 열심히 살면? 나는 더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 더더 열심히 사는 사람이 나타나면? 단순히 열심히 사는 사람은 결국 밀려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열심히 살 수밖에 없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자. 나는 왜 열심히 살까? 결국 굶어 죽는 것에 대한 불안 때문이다. 한 번 도태되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고, 그 뒤로는 가난과 굶주림으로 가속할 것 같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지금은 과잉공급 시대다. 굶어 죽는 것은 오히려 더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우리를 옥죄는 것은 현실적 위험이 아니라 ‘불안의 상상력’일지 모른다.
열심히 살아오신 분들에게 한 가지 안 좋은 소식이 있다. 지금까지의 열심을 모두 무력화하는, 어마무시한 기술이 등장했다. 바로 인공지능이다. 아직은 ‘더더더 열심히’로 버틸 수 있다고 믿을지 모른다. 하지만 인공지능 앞에서는 그마저도 오래가지 못한다. 밤새 번역 아르바이트를 해도 AI 번역기는 몇 초 만에 수천 문장을 처리한다. 한 달 내내 준비한 기획안도, AI는 몇 분 만에 더 완성도 높게 만들어낸다. 챗바퀴를 아무리 빨리 돌려도, 인공지능은 그것을 단숨에 부숴버린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점점 빨라지는 이 공포의 챗바퀴를 멈추는 방법은 단 하나다.
챗바퀴로부터 내려서, 쉬는 것.
[글로벌에픽 김한샘 알케미랩 대표 / wow@globalepic.co.kr]
<저작권자 ©GLOBALEPIC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