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면 평가는 끝났지만 당국이 요구한 추가 증빙자료 제출과 검증 작업이 이어지고 있어, 최종 결과 발표를 앞둔 업계는 벌써부터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정량평가 확대...실적배당형 강세 속 증권사 유리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이 지난 5월 20일 발표한 '2025년 우리나라 퇴직연금 투자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은 501조4천억원으로 전년(431조7천억원) 대비 16.1% 늘었다. 연간 수익률은 6.47%로 2005년 제도 도입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번 평가는 바로 이 기간, 즉 지난해 1월부터 12월까지의 운용 실적과 관리 역량을 기준으로 이뤄졌다.
고용노동부는 앞서 올해 3월 사전설명회에서도 평가 결과 공개 범위 확대와 디폴트옵션 수익률 평가지표 신설 등을 골자로 한 개편 방향을 예고한 바 있다.
이러한 정량평가 확대는 업권별 유불리로 이어질 것이란 관측을 낳고 있다. 지난해 실적배당형 수익률(16.80%)이 원리금보장형(3.09%)의 5배를 웃돈 만큼, 실적배당형 포트폴리오 비중을 늘려온 대형 증권사들이 정량 지표에서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증권업권의 퇴직연금 시장 점유율은 2023년 22.7%에서 2024년 24.1%, 2025년 26.2%로 매년 확대되는 추세다.
현장의 반응도 다르지 않다. 한 대형 증권사 퇴직연금 관계자는 "올해는 수익률 같은 계량 지표의 비중이 체감될 정도로 높아졌다"며 "실적배당형 상품 비중을 미리 늘려둔 포트폴리오는 지난해 같은 주가 상승기에는 정량평가에서 유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면 원리금 보장 상품 비중이 높은 은행·보험업권은 긴장하는 모양새다. 정성평가와 리스크 관리 지표를 앞세워 막판 뒤집기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디폴트옵션 첫 평가...안정형 쏠림에 수익률 뒷걸음
다만 외형 성장과 달리 내용은 아쉽다는 평가다. 디폴트옵션 적립금의 85.4%(약 45조5천억원)가 안정형·초저위험형 상품에 몰려 있고, 이 구간의 수익률은 2.6%대에 그친 것으로 집계됐다. 그 여파로 정부 승인을 받은 41개 금융기관의 319개 디폴트옵션 상품 전체의 지난해 연간 수익률도 3.7%로, 전년(4.1%)보다 0.4%포인트 낮아졌다.
이에 고용노동부가 성과가 미흡한 상품에 대해 가입 중지·승인 취소 등 불이익을 주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저조한 성적표를 받아든 사업자들은 속을 태우고 있다.
DB형 적립부족 지표 신설...금융사 대응 분주
디폴트옵션 못지않게 눈에 띄는 대목은 새로 도입된 DB형 관련 지표다. 확정급여(DB)형 도입 기업의 적립부족 여부와 이를 해소하려는 사업자의 노력을 평가하는 항목이 이번 평가에 처음 반영됐다. 가입자 보호를 위해 기업의 최소적립금 의무를 강화한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근퇴법) 개정 기조 등 당국의 정책적 배경이 반영된 결과다.
이 항목이 신설되면서 금융사들은 리스크 관리 체계를 입증하는 데도 공을 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대형 금융사들을 중심으로 업권별 간사 회사를 지정해 의견을 취합하는 등 공동 대응 전선을 구축하기도 했다.
한편, 이번 평가지표 개편과 별개로 제도 전반의 실효성을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시장 전문가들은 사업자평가 제도가 법정 제도로 자리 잡았지만 평가 결과의 제한적 공개와 형식적 평가항목 등으로 인해 제도의 실효성이 충분히 확보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당국이 추진 중인 평가지표 정교화와 순위 공개 범위 확대 등의 후속 조치가 이러한 제도적 한계를 얼마나 보완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시업자 평가 실효성 논란 속...순위 전면공개 검토 촉각
평가 지표가 촘촘해진 것과 별개로, 정작 현장에서는 평가의 실효성에 의문을 던지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정부 공인 우수 사업자 타이틀이 실제 가입자 유치나 자금 이동(머니무브)으로 이어지는 효과는 기대에 못 미친다는 지적이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11월 30일 발표한 '2025년 우수 퇴직연금사업자' 평가에서 상위 10%로 선정됐던 미래에셋증권, 삼성증권,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의 사례를 봐도 시장에서 체감할 만한 변화는 크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대형사 퇴직연금 관계자는 "냉정하게 말해 고객에게 그렇게까지 소구력이 있는 평가 결과는 아니다"라며 "우수 사업자 타이틀을 땄다고 해서 기업이나 가입자들이 적립금을 더 주거나 옮기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대형 보험사 관계자도 "우수 등급을 받은 상위 몇 개 회사만 마케팅에 적극 활용할 뿐, 나머지는 법적 의무 사항이라 참여하는 분위기"라고 짚었다.
마케팅 효과에 대한 회의론은 평가 자체의 취지에 대한 비판으로도 이어진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업권 내 선두권 금융사들끼리 3파전, 4파전 양상으로 자존심 싸움을 벌이는 형국"이라며 "우수 등급에서 밀린 금융사는 자산관리(WM)부문 부행장이나 경영진이 문책을 당할 수 있어 실무진들이 여기에 매달리는 셈"이라고 말했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이 사업자 평가가 시장 활성화라는 목적보다 금융사 내부 성과지표(KPI)와 경영진 인사고과용 경쟁으로 흐르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고용부가 검토해온 '전체 순위 전면공개' 방안은 업계의 심리적 압박을 한층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한 업계 전문가는 "당국 내부 회의에서 평가 실효성을 높이려면 차라리 사업자 전원을 한 줄로 세워 순위를 공개하자는 의견이 강하게 나온 것으로 안다"며 "순위가 낱낱이 공개되는 방식으로 결론이 난다면 하위권으로 분류될 우려가 있는 사업자들은 상당한 브랜드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9~10월 평가 결과 발표...수익률 격차 해소가 과제
이러한 논란 속에서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은 추가 서류 검증 등 정량·정성 지표 종합 분석을 거쳐 오는 9~10월 중 최종 평가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정량평가 확대로 인한 업권별 유불리, 디폴트옵션 저성과 상품의 퇴출 여부, DB형 적립부족 대응력, 그리고 순위 전면공개 방안까지, 이번 평가에는 예년보다 훨씬 많은 변수가 얽혀 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결국 이런 사업자평가 제도가 존재하는 이유는 가입자의 수익률을 끌어올리는 데 있다. 지난해 상위 10% 가입자의 수익률(19.5%)과 하위 10% 가입자의 수익률(0.5%) 간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는 점에서, 이번 평가가 그 격차를 실질적으로 좁히는 계기가 될지가 관건으로 꼽힌다.
다만 우수 사업자 타이틀이 곧바로 가입자 유치나 자금 이동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회의론이 여전한 만큼, 500조원 규모의 퇴직연금 시장이 이번 평가로 실제 얼마나 움직일지는 미지수다.
그럼에도 업권 내부에서는 우수 등급이 이미 마케팅 소재로 활용돼 온 만큼, 순위 공개 방식이 확정되면 하위권으로 몰릴 사업자들의 브랜드 리스크도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이번 제도 정비가 실적배당형 자산으로의 머니무브를 촉진하는 실질적 경쟁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또 한 번 내부 보고용 경쟁에 그칠지는 최종 결과가 나온 뒤에야 판가름 날 전망이다. 발표를 두 달여 앞둔 업계와 가입자들의 시선이 벌써부터 쏠리는 이유다.
[글로벌에픽 성기환 CP / keehwan.s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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