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과 장지연 노사정 태스크포스(TF) 위원장이 지난 2월 6일 서울 여의도 켄싱턴 호텔에서 열린 '퇴직연금 기능 강화를 위한 노사정 TF 공동선언문 발표'에 참석해 참석자들과 기념촬영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605280902140042907cc35ccc5c112222163195.jpg&nmt=29)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과 장지연 노사정 태스크포스(TF) 위원장이 지난 2월 6일 서울 여의도 켄싱턴 호텔에서 열린 '퇴직연금 기능 강화를 위한 노사정 TF 공동선언문 발표'에 참석해 참석자들과 기념촬영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미지 확대보기이는 제도 도입 21년 만에 공급자 카르텔을 무너뜨릴 수 있는 '메가 트렌드'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적립금의 증가 양상을 보면 가입자들의 선호도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개인형퇴직연금(IRP)이 지난해 130조9천억원으로 전년 대비 32.6% 급증했으며 확정기여형(DC)도 137조원으로 20.3% 증가했다. 반면 기업이 책임지는 확정급여형(DB·228조9천억원)은 6.7% 성장에 그쳤다.
가입자들이 기업의 보장보다 자신의 손으로 자산을 직접 운용하는 방식을 선호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금융업계에서는 이를 '스마트 컨슈머'의 등장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는 기존 '계약형'과 완전히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다. 계약형은 가입자가 개별 상품을 직접 선택해야 하는 방식이다. 반면, 기금형은 독립된 수탁법인(기금)이 사용자 납입금을 모아 공동 기금을 조성한 뒤 전문가 운용 주체가 거시적 관점에서 자산을 배분하고 운용한다.
미국의 401(k), 호주의 슈퍼앤뉴에이션(Superannuation) 등 연금 선진국들은 이 방식으로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고수익을 달성하고 있다. 기금형의 가장 큰 장점은 '규모의 경제'다. 개별 가입자가 얻기 어려운 투자 정보 접근성, 국제 자산 분산 투자, 대규모 자산 운용을 통한 수수료 절감 등이 가능해질 수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기금형 도입으로 가입자들이 평균 0.5~1.0%p의 수수료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며 이를 복리로 계산하면 20년 뒤 수천만 원대의 자산 차이가 난다"고 설명했다.
더욱 중요한 점은 기금형이 '공급자 중심의 카르텔 구조'를 해체할 수 있다는 부분이다. 현재는 은행·보험·증권 등 각 금융회사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상품을 구성하고 가입자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기금형이 본격 시행되면 금융회사 선택 권한이 사용자(기업)에게로 이전되며, 가입자 이익 극대화를 최우선으로 하는 운용 주체들 간의 경쟁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기금형이 도입되면 개별 금융회사들의 공급자 중심 마케팅은 통하지 않을 것"이라며 "가입자 중심의 포트폴리오 운용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모든 사업장에 퇴직연금 도입을 의무화하는 것은 표면적으로 영세·중소기업에 부담을 주는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는 금융사에게 거대한 신규 시장을 열어주는 변화다. 현재 적립금의 상당 부분이 대기업과 중견기업에 집중되어 있는 상황에서 의무화는 지금까지 소외되었던 영세기업 근로자들까지 연금 시스템으로 편입시키는 기회를 의미한다.
정부는 이 과정에서 단계적 시행, 영세기업 세제 지원, 소액 적립금 관리비 지원 등의 대책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최종적인 시행 시기와 방식은 영세·중소기업 실태조사 결과에 따라 결정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의무화 과정에서 실제 현장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하겠다는 신호다.
머니무브 시대의 승자…소비자 중심 경영이 생존 방정식
기금형 도입과 의무화가 현실화되면 향후 5~10년간 퇴직연금 시장에서 대규모 '자금 이동(머니무브)'이 일어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금융업계에 따르면 이러한 변화가 금융사의 생존을 좌우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금융회사별 퇴직연금 적립금은 은행 260조5천억원(52.0%), 증권사 131조5천억원(26.2%), 보험사 104조6천억원(20.9%) 순으로 집계됐다. 증권사의 점유율이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반면 은행과 보험의 비중은 계속 하락하는 추세다. 기금형 도입으로 이 추세가 급격하게 가속화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은행·보험업권은 기금형 시대에 '원금 보장'과 '안정성'만으로는 가입자를 붙잡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대신 은퇴 후 합리적으로 세금을 줄이며 돈을 꺼내 쓰게 돕는 고도화된 '인출기(Decumulation) 지갑 관리' 솔루션을 중장기 비전으로 제시해야 한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증권업권도 대비가 필요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지난해 고수익률로 고객을 유인했으나, 시장 변동성이 심해질 경우 가입자의 신뢰가 흔들릴 수 있을 것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향후 5년은 퇴직연금 시장의 구조적 재편이 이루어지는 시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며 "금리나 상품 스펙 몇 %p의 우위로는 초장기 연금 가입자를 붙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가입부터 은퇴 후 인출까지 전 생애에 걸친 '신뢰 경쟁'이 시작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금형 시대, 신뢰할 수 있는 금융사만 살아남는다
퇴직연금 2.0 시대의 유일한 생존 방정식은 '소비자 중심 경영(CCM)'의 전면 도입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기금형 제도라는 거대한 변화의 파도 앞에서 공급자 편의대로 상품을 나열하고 판매 성과에만 집착하는 구시대적 금융 거버넌스는 끝났다는 의미다. 퇴직연금은 단순한 금융상품이 아니다. 가입자의 가장 중요한 '인생 후반부 자산'이며 개인의 노후와 가족의 미래를 좌우하는 요소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기금형 운용 기관의 선정 과정에서 투명성과 독립성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학계와 업계에서는 "기금형 운용 기관의 선정 기준을 공개하고 운용 성과에 대한 정기적인 외부 평가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이러한 투명성 강화는 결국 가입자 신뢰 구축으로 이어지며, 이것이 금융사의 경쟁력이 되는 구조다.
퇴직연금은 단순한 금융상품이 아니다. 가입자의 가장 중요한 '인생 후반부 자산'이며 개인의 노후와 가족의 미래를 좌우하는 요소로 평가된다. 소비자 이익과 신뢰를 중장기 비전의 최우선에 두고 이를 상품 기획과 사후 관리 체계에 이식하는 금융회사만이 향후 1천조원대 거대 연금 영토의 승자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금융회사들에게 남겨진 선택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글로벌에픽 성기환 CP / keehwan.s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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