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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공개 파블로 피카소 스케치북의 의미

- 완성작 너머에서 드러나는 창작의 출발점

이수환 CP

2026-02-27 10:10:00

피카소의 스케치북 실물 촬영본 / 사진제공=K trendy NEWS

피카소의 스케치북 실물 촬영본 / 사진제공=K trendy NEWS

[글로벌에픽 이수환 CP] 대구 동구 봉무동 태왕아너스 빌딩 2층 특별전시관에서 열리는 《중첩된 시선 : 피카소의 변주에서 한국의 결까지》는 2026년 3월 6일부터 8월 31일까지 이어진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주목할 대목은 파블로 피카소의 스케치북 공개다. 한국에서 처음 소개되는 기록물이다.

스케치북은 흔히 완성된 회화를 준비하는 단계로 이해된다. 그러나 피카소의 드로잉은 준비에 머물지 않는다. 선은 형태를 찾기 위한 도구이면서 동시에 사고가 지나간 자리다. 여러 번 겹쳐 그어진 선, 지웠다가 다시 남긴 흔적은 선택과 수정의 시간을 드러낸다. 화면이 완결되기 이전의 긴장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번에 공개되는 스케치북에서는 동일한 모티프가 반복된다. 인물의 비례가 달라지고, 시점이 바뀌며, 형태가 분해된다. 한 장에서 시작된 형상은 다음 장에서 다시 흩어진다. 직선적인 완성의 과정이라기보다, 맴돌며 다듬는 탐색의 기록에 가깝다. 드로잉은 결과를 향한 예비 단계가 아니라 사고가 머무는 자리로 읽힌다.

피카소의 작업을 떠받친 기초는 언제나 선이었다. 회화와 판화가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 아래에는 드로잉이 놓여 있다. 선은 화면의 토대이자 실험의 출발점이다. 스케치북은 그 기반을 보여준다. 회화가 하나의 결론이라면, 드로잉은 그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이다.

전시장에서는 스케치북과 유화가 나란히 놓인다. 완성된 마스터피스와 기록물이 같은 공간에 자리한다. 관람자는 결과와 형성의 순간을 오가게 된다. 작품은 단단히 굳어진 이미지가 아니라 축적된 선택의 집합으로 읽힌다.
피카소의 스케치북 실물 촬영본 / 사진제공=K trendy NEWS

피카소의 스케치북 실물 촬영본 / 사진제공=K trendy NEWS

이번 전시는 피카소를 단독으로 조명하지 않는다. 클로드 모네와 빈센트 반 고흐,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작품이 함께 놓인다. 빛과 색채가 형상을 흔들고, 감정이 화면을 밀어 올리며, 선이 인물을 단순화하고, 형상이 공간 속에서 가늘게 응축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드로잉은 형식이 만들어지는 출발점으로 자리한다.

스케치북은 개인적 기록이면서 동시에 시대의 공기를 담는다. 20세기 전반, 시각 경험은 빠르게 변했다. 새로운 시점과 분절된 화면이 등장했다. 피카소의 선은 그 변화에 응답하며 화면 위에서 시험을 거듭했다. 스케치북은 그 실험이 축적된 장소다.

기록물이 전시 공간으로 나오는 일은 흔치 않다. 보존과 연구의 영역에 머물던 자료가 관람의 장으로 옮겨진다. 연구자에게는 분석의 실마리를, 일반 관람객에게는 형성 과정을 읽을 기회를 제공한다. 자료는 닫힌 공간에서 벗어나 공적 시선 앞에 놓인다.

전시장은 약 400평 규모다. 작품 간 간격을 넉넉히 두었다. 설명은 절제했다. 관람자는 페이지의 흐름과 선의 이동을 따라가며 의미를 읽는다. 텍스트보다 화면이 먼저 말을 건다. 기록은 해설이 아니라 관찰을 통해 이해된다.

이번 전시는 바라크나눔그룹과 꾸바아트센터가 함께 준비했다. 기업과 전시 기획 기관의 협력이 기록물 공개와 장기 전시를 가능하게 했다. 전시는 6개월간 이어진다. 충분한 시간은 반복 관찰을 허용한다.

《중첩된 시선 : 피카소의 변주에서 한국의 결까지》는 완성된 결과만을 보여주는 전시가 아니다. 선이 형상을 만나고, 형상이 다시 해체되는 과정을 드러낸다. 스케치북은 거장의 권위를 강화하기보다 형성의 시간을 보여준다. 드로잉은 준비가 아니라 사유의 현장으로 남는다.

[글로벌에픽 이수환 CP / lsh@globalep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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