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 시절의 눈물 젖은 기억… 가난했던 일본 유학 시절, 돈을 아끼기 위해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먹었던 맹맹한 오니기리. 그땐 참 탐탁지 않은 음식이었지만, 한국으로 돌아와 문득 다시 떠올려보니 이만큼 바쁜 현대인을 위한 완벽한 영양식도 없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어떤 토핑을 얹고 채우느냐에 따라 무궁무진한 변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나 방송국 나PD야!" 외치고 싶던 초짜의 싸움
음식 전문가도 아닌 전직 방송국 PD가 "세상에 없다면 내가 직접 만들어보지 뭐!"라는 배짱 하나로 덜컥 골목 모퉁이에 '카도(KADO)' 문을 열었다. 처음엔 밥 속에 참치와 볶은 김치를 넣고 일본 전통 방식대로 손에 소금물을 묻혀 겉면을 조물조물 뭉쳐내기 시작했다. 제법 그럴싸한 모양에 혼자 대박을 예견했었다.
딱, 그때까지만 좋았다.
오해와 잔소리가 난무하던 혹독한 첫 달
속도가 안 나니 손님들 눈엔 그저 답답해 보였나 보다. "아저씨 더러워요, 왜 자꾸 손으로 주물러요?", "에이, 딱 보니 초짜네!"라는 핀잔이 날아왔다.
속으론 '내가 방송국 나PD인데!' 싶었지만 꾹 참았다. 식은땀을 흘리며 주먹밥 끝을 살짝 떼어 맛을 보다가 귀신같은 손님에게 "왜 거기에 침을 묻혀요?!"라며 더럽다고 질려버리는 오해까지 받았다. 그 이후로 하루에 손님이 서너 명도 안 오는 암흑기가 시작되었다.
2. 위기 속에서 깨달은 소통과 '정감 어린 소통구라'
에이, 때려치우고 여의도로 돌아갈까?
낮에 부업 삼아 즐기려던 안이한 자세를 반성하며 마음을 고쳐먹었다. 찾아오는 한 명의 손님이라도 신처럼 모시기로 결심했다. 맛이 부족하다면 정성과 소통으로 채우겠다는 절실함이 생겼다.
요리를 매개로 한 화려한 소통
그날부터 손님들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며 이른바 '정감 어린 구라(입 구 口, 화려할 라 羅— 요리를 통한 화려한 대화)'를 시작했다.
손님들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나누자 가게는 서서히 가족적인 공간으로 변해갔다. 특히 가게 최고의 모니터링 요원이자 단골이 되어준 은광중학교 2학년 학생들에게 매일 장단점을 피드백 받으며 집요하게 맛을 업그레이드해 나갔다.
3. 꿈속 할머니가 점지해 준 '한국식 베이스'의 비밀
양념을 아무리 세게 해도 밍밍한 이유
손님들과는 친해졌지만 한 달 사이 줄어드는 매출에 두려움이 엄습했다. 처음엔 신기해서 왔던 사람들이 "그냥 삼각 모양의 맹맹한 주먹밥이네"하며 돌아서는 것 같았다.
밥을 뭉치고 버리는 눈물의 일상이 반복되던 어느 날 밤, 꿈속에 할머니 한 분이 나타났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신 친할머니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드는 분이었다. 그분은 인자하게 내 이름을 부르더니, 조곤조곤 무언가를 타이르며 손에서 무언가를 꺼내 보였다. 그것은 바로 '깨'와 '소금'이었다.
어긋난 요철이 딱 맞아떨어지듯
꿈에서 깨자마자 부엌으로 달려가 기존 방식을 버리고 밥 자체(베이스)에 깨와 소금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속에 들어가는 양념이 아니라 주먹밥의 가장 큰 판인 '밥'이 먼저 간이 맞아야 한다는 본질을 깨달은 것이다.
조심스레 뭉쳐 맛을 본 순간, 전율이 일었다. 양념과 밥알이 완벽하게 어우러지는, 일본식 오니기리의 밋밋함을 깨부순 '진짜 한국식 주먹밥'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4. 익숙함을 재해석하는 '뷰자데(Vuja de)'의 힘
세상에 없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것은 예술의 영역이며 너무나 어렵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속 더 나은 맛은 이미 있는 유(有)에서 유(Unique)를 더하는 재창조로 충분하다.
늘 보던 익숙한 것을 완전히 낯설게 바라보는 시선, 즉 '뷰자데(Vuja de)'가 대박의 비밀이었다.
가끔 절벽 바위에 붙어사는 검은 버섯이니, 돼지 한 마리에서 아주 조금 나오는 특수부위니 하며 과장하는 가게들이 있다. 세상에 그런 소량 부위가 그렇게 흔하다면 벌써 멸종했을 것이다. 그건 정감 어린 구라가 아니라 거짓말이다.
낚시로 갓 잡아 올린 참치나 흔한 참치캔이나 본질은 똑같다. 중요한 건 익숙한 재료를 정직하게 사용해, 어떻게 황금 비율로 배합하고 맛있게 재해석하느냐다.
카도(모퉁이)는 바로 그 정직함과 배합의 가치를 찾아낸 것이다.
5. 밀려드는 손님, 지옥(?) 같았던 경이로운 대박
"장사가 너무 잘 돼서 무섭다"
베이스를 바꾸고 정성을 더하자 기적이 일어났다. 입소문을 탄 주먹밥의 인기는 폭발적이었고, 가게 밖으로는 끝이 보이지 않는 줄이 늘어섰다.
하루에 20kg 쌀 한 부대가 낮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바닥을 드러냈고, 대형 전기밥솥 5개가 주방에서 쉴 새 없이 팽팽 돌아갔다. 특히 점심시간에는 몰려드는 손님들의 열기와 주방의 뜨거운 밥 김이 뒤섞여 마치 불가마 같았다.
출근해서 문을 열면 손님들이 파도처럼 밀려오는데, 순간 귀신처럼 보일 정도로 경이로운 공포를 느꼈다. "마치 지옥 같았어"라고 표현하면 배부른 소리라 하겠지만, 당시에는 정말 손님이 너무 많이 와 무서울 정도의 대성공을 거두었다.
"기존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우리 입맛에 맞게 재창조한 완벽한 한 끼."
골목 모퉁이 작은 가게에서 시작된 한국식 주먹밥의 기적은 결국 정성과 소통, 그리고 본질에 집중한 결과였다. 앞으로도 초심을 잃지 않고, 정직한 맛과 정감 어린 소통으로 마음까지 든든해지는 주먹밥을 부지런히 뭉쳐낼 것이다.
늘 모퉁이를 채워주었던 모든 이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한다.
![[장사는 90% 소통이다] 오니기리에서 한국식 주먹밥으로, '카도(모퉁이)'의 탄생 비하인드 스토리](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6060413363802128048439a4874112222163195.jpg&nmt=29)
[석현수]
현)빅컬쳐엔터테인먼트회장
WB 글로벌 F&B 그룹회장
STN TV 예능부문 대표
전)중앙대학 아트센터 예술감독
동아일보 동아콩쿨 자문위원
다큐서울 프로듀서
국내최초 1995년 삼각주먹밥 카도 프랜차이즈 창시자
[석현수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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