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회장이 이번 사업보고회에 주목하는 이유는 경영 환경의 악화 속도가 예상 이상이기 때문이다. 미국발 관세 부과 여진이 계속되는 가운데 중국 경쟁사들의 추격이 더욱 거세지면서 가전, TV, 석유화학, 배터리 등 LG의 주력 사업 전반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기업의 3~4배 자원 투입" 위기의식 공유
구 회장은 지난달 24일 개최된 사장단 회의에서 이러한 위기감을 직접 표명했다. "중국 경쟁사들은 우리보다 자본과 인력에서 3배, 4배 이상의 자원을 투입하고 있다"며 경영진의 분발을 촉구한 것이다. 아울러 "구조적 경쟁력 강화가 시급하다는 인식을 같이 해왔지만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많다"고 밝혀 향후 더욱 강도 높은 쇄신을 예고했다.
수익성 낮은 사업 정리, 미래 먹거리 집중
LG는 이미 올해 여러 건의 사업 철수와 매각을 단행했다. LG전자는 전기차 충전기 사업을 종료했으며, LG디스플레이는 중국 광저우의 액정표시장치(LCD) 공장을, LG화학은 워터솔루션사업부를 각각 매각했다. 앞으로도 수익성이 낮거나 경쟁력이 떨어진 사업의 추가 철수와 매각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대신 LG가 집중하고자 하는 영역은 명확하다. 인공지능(AI), 로봇, 전장, 바이오, 냉난방공조(HVAC) 등이 새로운 미래 성장동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2차전지와 전장 사업은 전기차 시장의 성장과 맞물려 전략적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AI 전환 가속화, 조직 혁신의 핵심
이번 사업보고회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AI 전환(AX·AI Transformation) 전략의 구체화다. LG전자, LG CNS, LG디스플레이 등 주요 계열사들은 이미 인공지능 기술을 바탕으로 한 사업혁신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각 계열사는 최고디지털책임자(CDO)를 중심으로 AI 전환 전략을 총괄하고 있으며, 구 회장도 이를 향후 사업의 성패를 좌우할 핵심 요소로 보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구 회장이 사업보고회 기간 중 경북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 서밋 2025에도 참석한다는 것이다. 지난 1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골프 회동을 마친 후 귀국한 구 회장은 APEC 현장에서도 글로벌 빅테크 거물들과의 연쇄 회동을 가질 전망이다.
올해 APEC CEO 서밋의 주제인 'Bridge, Business, Beyond'는 경계를 넘어 혁신적인 기업 활동을 통해 새로운 협력 관계를 구축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구 회장은 이러한 글로벌 교류 속에서 미국 관세 대응 전략과 현지 투자 계획, 공급망 재편 등에 대한 통찰을 얻으면서 동시에 LG의 내년 사업 방향을 더욱 구체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영진 교체 임박, '쇄신'의 신호
사업보고회 결과는 비단 사업 재편에만 머물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인적 쇄신도 함께 단행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LG는 2023년 LG에너지솔루션,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의 CEO를 교체한 바 있고, 지난해에는 LG유플러스를 제외한 대부분의 CEO를 유임하며 안정에 방점을 두었다. 다만 올해는 LG생활건강이 실적 부진으로 CEO를 교체하는 등 변화의 신호가 포착되고 있다.
재계는 구 회장이 '선택과 집중' 전략에 따라 사업 구조조정에 본격적으로 착수하는 만큼, 이번 사업보고회 이후 경영진에서도 큰 폭의 변화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조주완 LG전자 사장과 정철동 LG디스플레이 사장 등이 승진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체질 개선 vs 단기 실적 ... LG의 선택은
결국 이번 사업보고회는 LG가 얼마나 과감하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중국 기업들의 저가 공세와 미국의 보호주의 기조라는 이중의 위협 속에서 LG가 구조적 경쟁력 강화에 과감히 투자할지, 아니면 단기 실적 관리에 치중할지의 선택이 앞으로의 LG 그룹 운명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구 회장이 이번 사업보고회를 통해 내놓을 결정들이 자본시장과 업계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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