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관세 정책 불확실성, 중국의 전기차 공세, 유럽의 탄소규제라는 글로벌 삼중 위기 속에서 현대차는 기존의 경영 방식을 완전히 벗어나기로 선택했다.
2025년 1월 취임한 무뇨스는 최고 경영진 진용을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CFO 자리에는 미국 판매법인 재무 경험자를 앉혔고, R&D와 제조 부문의 리더십도 교체했다. 이는 단순한 인사이동이 아닌, '소프트웨어 정의 차(SDV) 기반 글로벌 기업'으로의 본격 전환을 선언한 것이었다.
호세 무뇨스, 글로벌 경영의 '유연성'으로 역대 최대 실적 달성
호세 무뇨스(이하 무뇨스)와 현대차의 인연은 2019년 4월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는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입사했고, 북미 지역에서 판매 네트워크와 딜러 관계를 강화하며 뚜렷한 성과를 보였다. 2022년 글로벌 COO로 격상된 그는 미주·유럽·인도·중동 아프리카 등 해외 권역의 전체 사업을 총괄했다. 그리고 현대차 역사 57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이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2025년 11월 강남대로 사옥에서 열린 타운홀 미팅에서 무뇨스는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2026년과 그 이후를 내다볼 때, 우리의 강점은 제품의 품질과 안전성, 파워트레인과 시장 전반에 걸친 전략의 유연성, 그리고 무엇보다 임직원들의 재능과 헌신에 있다"고 강조했다. 역대 최대 실적이라는 수치 뒤에는 한 가지 기술에 올인하지 않는 '유연한 전략'이 있었던 것이다.
2026년 무뇨스에게 주어진 과제는 명확하다. 완성차 시장의 출혈경쟁 속에서도 글로벌 영업이익률을 방어하고, R&D와 제조 부문의 협력으로 SDV(소프트웨어 정의 차) 기술을 성공적으로 상용화하며, 현대·기아·제네시스 세 브랜드의 프리미염 위상을 동시에 강화해야 한다.
김승준 CFO, 원가 구조 이해형 재무 리더십의 시작
2024년 12월 10일, 현대자동차의 최고재무책임자 자리에 김승준 전무가 임명되었다. CFO 직책을 받은 김승준은 미국 판매법인 재무총괄을 거친 인물로, 완성차 양산 현장의 원가 구조와 수익성 결정 메커니즘을 누구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고 있다. 단순히 장부를 관리하는 재무가 아니라, 사업 현장에서 비용이 어떻게 발생하고 수익성이 결정되는지를 파악하는 '경영형 재무 리더'다.
전임 CFO 이승조는 2024년 12월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그는 CFO 겸 최고전략책임자(CSO)로서 글로벌 3대 신용평가사로부터 현대차 전체에 'A등급'을 획득했고, 인도 법인의 IPO를 성공시킨 주역이었다. 이러한 탄탄한 기반 위에서 김승준은 더욱 도전적인 과제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2026년 CFO 김승준이 해결해야 할 과제는 세 가지다. 첫째는 미국 관세 정책 변화에 따른 원가 상승분을 어떻게 가격에 반영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둘째는 EV 원가의 40~50%를 차지하는 배터리에서 중국 경쟁사와의 원가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다. 셋째는 SDV 기술 개발에 대한 R&D 투자를 확대하면서도 주주들의 단기 수익성 요구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것이다. 전략과 재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2026년 김승준의 최대 숙제가 될 것이다.
만프레드 하러, 포르쉐에서 현대차의 SDV 총책임자로
2026년 1월 현대자동차의 R&D 전체를 총괄하게 될 만프레드 하러(이하 하러)는 독일 뮌헨응용과학대 기계공학 석사, 영국 바스대 박사 출신의 차량 개발 전문가다. 1997년부터 약 25년간 아우디, BMW, 포르쉐에서 샤시 기술 개발부터 전장 시스템,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젝트 총괄까지 두루 경험했다. 포르쉐 부사장으로 재직할 때는 포르쉐 최초의 전기차인 타이칸 개발을 이끌었으며, 애플의 자동차 프로젝트에서도 차량담당 헤드로 근무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2024년 5월 현대차에 합류한 하러는 R&D본부 신설 부서인 제네시스&성능개발담당 책임자로 시작했다. 불과 16개월 만인 2025년 12월, 그는 사장으로 승진하며 현대차 역사 여섯 번째 외국인 사장이 되었다. 현대차그룹은 발표문을 통해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현대차·기아만의 브랜드 정체성 확립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하러의 포르쉐 경험은 현대차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줬다. 고성능 자동차 제조의 전통이 강한 포르쉐에서 배운 것은 단순히 신기술 도입이 아니라, 각 브랜드가 '어떤 차별성을 가져야 하는가'를 정의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현대차와 기아의 브랜드 정체성 확립으로 구체화된 것이다.
2026년 R&D본부장으로서 하러의 임무는 명확하다. 차세대 전기차 플랫폼 개발을 통해 배터리 통합 설계, 경량화 구조, 공력 최적화로 경쟁사를 능가하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동시에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Pleos Connect'와 자율주행 AI 기술 'Atria AI' 등 SDV의 핵심 기술을 개발하고 내재화해야 한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완벽한 결합으로 고객이 경험하는 '차량의 품질'을 극대화하는 것이 그의 미션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순수 EV뿐만 아니라 수소연료전지, 하이브리드 등 다양한 파워트레인의 병렬 개발도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정준철, SDF로 제조 혁신의 새 시대를 열다
2026년 1월 1일, 현대자동차의 제조 전 부문이 정준철 신임 사장의 지휘 아래 놓이게 된다. 정준철은 완성차 생산기술을 담당하는 제조솔루션본부와 수익성·공급망 관리의 핵심인 구매본부를 동시에 총괄한다. 이는 '생산 효율성'과 '원가 경쟁력'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다.
정준철의 승진이 의미하는 바는 현대차가 'SDF(소프트웨어 정의 공장)' 구축에 얼마나 큰 비중을 두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SDF는 단순한 스마트팩토리가 아니다. 기존의 스마트팩토리가 자동화 기술을 활용해 생산 효율을 높이는 것이라면, SDF는 공장 전체가 소프트웨어로 제어되고 최적화되는 개념이다. 같은 생산 라인에서 현대차, 기아, 제네시스 등 여러 브랜드의 차량을 동시에 생산할 수 있으며, 각 차량의 부품 구성이 다르면 소프트웨어 명령 하나로 생산 순서, 로봇의 동작, 품질 검사 기준 등이 모두 자동으로 재설정된다. 수요 변화나 부품 부족 상황에도 실시간으로 대응하여 생산 일정을 조정할 수 있는 '지능형 공장'인 것이다.
정준철의 과제는 네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국내와 글로벌의 모든 공장을 SDF 체계로 전환하는 5년 이상의 대규모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이다. 둘째는 현대차그룹과 함께 약 8조5000억원 규모로 구축 중인 미국 루이지애나의 전기로 제철소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저탄소 자동차강판을 생산함으로써 북미 시장의 전기차 수요에 신속히 대응하는 전략의 핵심이다. 셋째는 중국·인도·유럽 등 복잡한 글로벌 공급망을 최적화하는 것이며, 넷째는 보스턴다이나믹스 로봇 등을 제조 현장에 도입하여 위험한 작업의 자동화와 생산성 향상을 추진하는 것이다. 2026년은 이 네 가지 과제가 동시에 진행되는 현대차 제조의 '변혁의 해'가 될 것이다.
무뇨스·하러·정준철이 그리는 현대차의 미래
현대자동차의 새로운 경영진 구도는 명확한 역할 분담을 보여준다. 호세 무뇨스는 "어느 시장에 어떤 차를 어떤 가격에 팔 것인가"를 결정하는 글로벌 경영 전략가다. 만프레드 하러는 "그 차를 어떤 기술로 어떤 성능으로 만들 것인가"를 정의하는 R&D 리더다. 정준철은 "그 차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저렴하게 만들 것인가"를 담당하는 제조 혁신가다.
세 리더가 유기적으로 협력할 때, 현대차는 이를 달성할 수 있다. 시장이 원하는 차를 개발(무뇨스의 전략 + 하러의 기술)하고, 고객이 원하는 수준의 성능으로 만들며(하러의 기술), 경쟁력 있는 가격에 공급하는 것(정준철의 제조). 이것이 2026년 현대차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다.
2025년의 역대 최대 실적은 무뇨스의 '전략적 유연성'이 얼마나 강력한가를 입증했다. 한 가지 기술에 올인하지 않고 다양한 파워트레인을 병렬로 운영하며, 지역별 수요에 맞춘 정교한 전략으로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던 것이다.
2026년은 하러의 '기술 혁신'이 가시화되고 정준철의 '제조 혁신'이 현장에서 구체화되는 한 해가 될 것이다. SDV 기술의 상용화, SDF 구축의 가속화, 미국 프로젝트의 성공적 추진이 현실이 될 때, 현대차는 2030년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톱 3 진입이라는 목표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현대차의 미래는 이 세 리더의 협력에 달려 있다. 2026년의 실행력이 모든 것을 결정할 것이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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