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실트론 연구원들이 반도체 소재인 실리콘 웨이퍼를 살펴보고 있다. SK실트론 제공

SK서린사옥
SK는 왜 팔기로 결정했나
SK가 SK실트론 매각에 나선 배경은 단순하다: 생존과 집중이다.
SK그룹은 2017년 LG그룹 계열 LG실트론 지분 51%와 재무적 투자자 지분 19.6% 등 총 70.6%를 약 7900억원에 인수했다. 당시 최태원 회장이 개인 자격으로 나머지 지분 29.4%를 사들이며 SK실트론은 SK의 반도체 포트폴리오의 일부가 됐다. 그러나 7년이 지난 지금, 이 자산은 판매 대상으로 전환됐다.
여기에 재무 안정성 문제가 겹쳤다. SK는 그룹 부채를 줄이고 현금 유동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 SK실트론 매각으로 약 5조원의 현금을 확보하면, 이를 차입금 상환이나 미래 투자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특히 AI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SK하이닉스에 집중 투자하기 위해서는 다른 자산을 '현금화'할 필요가 있었다.

두산 분당 사옥./두산그룹 제공
두산은 왜 5조원을 들이는가
두산의 입장은 정반대다. 약점을 강점으로 만드는 전략이다.
두산은 전통적으로 중공업·에너지에 집중해왔다. 조선, 엔진, 발전 설비 등이 핵심 사업이었다. 그러나 이런 구조는 점점 한계에 직면했다. 에너지 산업은 전환기에 있고, 조선시장은 포화 상태에 가까웠다. 두산은 2022년 반도체 후공정 테스트 업체인 두산테스나를 인수하며 반도체 시장으로의 진입을 본격화했다.
SK실트론 인수는 이 전략의 대규모 확장판이다. 두산은 이미 보유한 자산들을 연결하고 있다:
• 웨이퍼 제조: SK실트론을 통한 반도체 원판 생산
• 소재: 전자BG의 동박적층판(CCL) 사업
• 자동화: 로봇·자동화 부문의 생산 시스템
이들을 연결하면 반도체 웨이퍼→소재→테스트→자동화까지 아우르는 완전한 밸류체인이 완성된다. 두산이 하나하나 구축하기 어려운 '반도체 생태계'를 SK실트론을 통해 한 번에 확보하는 셈이다.
또한 글로벌 시장에서 SK실트론의 위상은 중요하다. 12인치 웨이퍼 기준 글로벌 시장 점유율 3위의 기업이다. SK하이닉스가 주 고객이었지만, 두산 인수 이후에는 고객 기반을 삼성전자, TSMC, 인텔 등 다양한 반도체 회사로 확대할 수 있다. 웨이퍼는 모든 반도체 제조에 필수 소재이므로, SK실트론은 두산에게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중심부로 진입하는 '표준 티켓'이 된다.
거래의 구조와 진행 과정
이번 인수는 두 단계로 진행된다. 두산은 이번 주 SK그룹이 보유한 지분 70.6% (SK그룹 보유 지분 51% + TRS 계약 지분 19.6%)에 대한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한다. 이후 최태원 회장의 개인 지분 29.4%는 별도 절차를 거쳐 연내 확보할 계획이다. 이렇게 하면 두산은 SK실트론 지분 100%를 차지하게 되고, SK실트론은 완전한 두산의 자회사가 된다.
거래 규모 5조원은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니다. 두산에게 이는 자사 매출 규모와 맞먹는 대형 투자다. 재무 부담은 두산이 해결해야 할 가장 큰 과제다. 차입금 증가, 이자 비용, 순손실 확대 등을 감수해야 하며, SK실트론을 흑자 기업으로 운영해 투자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
시장이 주목하는 것
이번 거래는 한국 재벌 재편의 신호탄이다. SK가 웨이퍼 사업을 내려놓는 순간, 그 자리는 두산이 채운다. 반도체 산업이 '국가 전략 산업'으로 취급되는 지금, 한국의 반도체 밸류체인이 기존 질서에서 미세하게 이동하고 있다.
SK의 입장에서 보면 정리와 재편. 두산의 입장에서 보면 도약과 도전. 같은 기업의 매각이 두 회사에게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는다는 점에서, 이번 거래는 한국 산업 구조 변화의 축소판이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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